[정치칼럼] 영화 타짜 2 “쫄리면 뒈지 시던가”
- ‘될 때까지 출마’는 책임의 언어가 아니다
정치에서 패배는 실패가 아니다. 패배를 설명하지 않는 태도가 실패다.
선거는 결과만 남기지 않는다.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시민이 던진 질문, 그리고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모두 하나의 메시지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뒤에도 그 메시지를 외면한 채 “그래도 나는 경험자”라고만 말하는 정치가 있다.
이때 정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맴돈다.
낙선은 단순한 운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은 언제나 이유 없이 표를 거두지 않는다. 설명이 부족했거나, 비전이 현실에 닿지 않았거나, 시대의 요구를 읽지 못했거나, 혹은 신뢰를 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든, 낙선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정치는 그 사정을 해석하고 다음 선택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패배의 이유를 묻는 질문 앞에서 침묵하거나, 경험이라는 말로 덮어버리는 순간 정치는 학습을 멈춘다.
정치인은 다시 도전할 수 있다. 그 자체는 문제 되지 않는다. 문제는 왜 다시 나왔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을 때다. 시민은 묻는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이전과 다른 판단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때 선택받지 못했던 이유를 어떻게 넘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이번엔 다르다”는 말만 반복된다면, 그 재도전은 결단이 아니라 시간 끌기에 가깝다.
정치에서 경험은 다시 출마할 수 있는 권리를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경험은 설명의 출발점일 뿐이다. 진짜 경험자는 자신의 패배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패배를 꺼내놓고 무엇이 부족했는지, 무엇을 버렸는지, 무엇을 새로 배웠는지를 말한다.
그 설명이 있을 때, 경험은 비로소 신뢰로 바뀐다.
반대로 경험만을 앞세우고 패배에 대해 말하지 않는 정치는 과거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시민은 정치인의 연차를 세지 않는다. 시민은 태도를 본다. 특히 패배 이후의 태도를 본다. 낙선을 겪고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 경험은 축적이 아니라 정체다. 정치는 될 때까지 버티는 게임이 아니다.
시민의 판단 앞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수정하는 과정이다.
정치가 진짜로 어려워지는 순간은 패배했을 때가 아니라, 패배의 이유를 말하지 않을 때다. 낙선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정치는 다음 승리를 약속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시민은 이미 한 번 답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 답을 존중하지 않는 정치가 다시 신뢰를 얻기는 어렵다.
정치는 경험을 말하는 자리이기 전에, 판단을 받아들이는 자리다.


